이른 아침을 먹고 부랴부랴 감자밭에 도착한 오영감은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밤 쏟아진 폭우 탓에 감자밭이 온통 물에 잠겨, 거뭇거뭇 탐스럽던 줄기는 간데 없고 높은 쪽에 심어진 감자꽃 몇 송이만 흙탕물 위에 둥둥 떠 있는게 아닌가!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애시당초 밑자리가 건 밭을 그냥 버리기가 아까와 감자나마 심은게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수몰지 보상을 받고도 한두해씩 농사를 더 짓던 사람들이 올해는 수확이 힘들거라며 새로 마련한 이주지로 모두 떠나 버렸고, 이제 나이도 있으니 농사는 그만 짓고 도시에서 편히 살라는 큰아들의 말도 있었지만 광주에 달랑 집 한 채만 사놓은 오영감으로서는 쉽사리 고향을 떠나기엔 아쉬움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이웃들이 하나 둘 떠나던 이른 봄날 수몰 예정선 위쪽에다 지었던 거주용 간이 천막을 손질하고, 아들 다섯에 딸 다섯 용케 짝까지 맞춰 열 명의 자식을 낳은 탓에 나이들어 허리 아픈 병만 얻었다며 짜증을 부려대는 마누라를 살살 어르고 달래서 땅 걸기로 소문난 이 샛골 밭에다 감자를 심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잘만 하면 올 한 해도 가을걷이까지는 무난하리라던 오영감의 예상과는 달리 늦은 봄에 접어들면서부터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여차하면 남들이 버리고간 논에 벼를 심어 짭짤한 재미를 보려고 씨나락과 함께 선금을 주고 육묘업자에게 모판을 맡겼던 그가 댐 건설 사업소에 전화로 담수계획을 알아보고 아까운 씨나락과 육묘비만 날린 채 모내기를 포기해야 했을 때는 정말이지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홧김에 다 때려치우고 광주로 올라가 손주녀석들 재롱이나 보며 살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심어놓은 감자야 하지무렵이면 수확할 수 있으니 그때까지만 꾹 참자고 애써 마음을 다져먹고 다시 눌러 앉았던 오영감이다.
기나긴 봄날을 비좁은 천막집에서 두 부부 얼굴만 쳐다보고 지내기도 따분한 일이다. 해만 뜨면 산으로 고사리며 취나물을 뜯으러 다니고, 그래도 남는 시간엔 하루에 몇 번이고 알량한 감자밭에 나가서 풀도 뽑고 북도 돋궈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비록 감자농사지만 일생에 마지막 농사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 뿌듯한 수확의 보람을 만끽하고 싶은 생각에 온갖 정성을 다 들였던 것이다.
오영감의 그런 정성탓인지 감자는 어느 해보다 무럭무럭 잘 자라 주었다. 오달지게 튼튼한 줄기며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이 감도는 이파리만 보아도 주먹만한 알맹이가 주렁주렁 매달린 모양이 눈 앞에 선하게 어려와 호흡마저 가빠지곤 했었다.
그런데 유난히 많이 내렸던 봄비 탓인지 봄 내 오영감의 가슴에 조바심을 일게하던 수위(水位)가 6월에 들어서면서 밭둑까지 넘실댔다. 이가야말로 진짜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한낮이면 이마가 벗겨질 정도로 따갑게 내리쬐는 6월의 하루볕에도 감자는 흡사 피를 빨아대는 거머리 배처럼 소록소록 알이 불어 날텐데 그 아까운 볕을 며칠 쬐지도 못한 채 물 속에 몽땅 잠기게 될 형편이니 어찌 미치지 않겠는가.
그래서 차라리 눈으로 안보는 게 속이나 편하겠다 싶어 감자밭 근처엔 얼신도 않은 채 2~3일을 지내다가, 그래도 궁금하고 안달이 나서 큰 마음 먹고 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 밭에 나와 보니 ‘아뿔사’ 벌써 경사진 밭의 아래쪽에는 물이 들어와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제 속상하다고 외면하고 말 일만도 아니었다. 그동안 들인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아직 밑이 덜 찬 잔챙이일 망정 단 한 알도 물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날 아침부터 오영감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감자를 캤다. 비록 알은 잘았지만 그런대로 간장에 넣고 졸여서 반차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조금 큰 것들은 다섯 살 난 손주의 불알만큼씩 커서 아쉬운대로 쪄 먹어도 될 법 했다. 단지 하루면 다 캘 수 있는 감자를 날마다 조금씩 캐는 이유는 하루라도 볕을 더 쬐면 그만큼 알이 실해질 것 같아 그날그날 물이 차오를 양만큼만 경사진 밭의 높이에 맞추어서 캐기 때문이었다.
어제만 해도 그랬다. 평소처럼 물이 바짝 다가선 아래쪽의 두어 이랑을 캐고 일어서려다 새벽에 들은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던 말이 생각나 인심 쓰듯 한 이랑을 더 캐고나서 이 상태로만 물이 불어 난다면 반 정도는 제때에 수확할 수 있을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랬었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오영감의 그런 기대를 송두리째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다. 어제 비가 많이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설마 했는데 밤사이에 불어난 물은 최소한 열흘 정도는 버텨줄 것 같던 밭을 흔적도 없이 덮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니 오영감이 망연자실해 하고 기가 막힐만도 했다.
그러나 오영감의 판단은 빨랐다. 얼마동안 멍하니 서있던 자세에서 돌연 옷을 벗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윽고 헐렁한 팬티와 메리야쓰만 남게되자 쇠스랑과 비닐자루를 챙겨들고 흙탕물 속으로 첨벙첨벙 들어가 발부리에 걸리는 줄기를 어림잡아 부지런히 감자를 캐기 시작했다. 물이 깊은 곳은 허벅지 근처까지 올라왔지만 아예 물속에 몸을 푹 담그다시피 허리를 굽히고 휘둘러대는 오영감의 손에 의해 건져 올려진 감자는 자꾸자꾸 자루 안으로 담겨져 갔다. 멀리서 그 광경을 목격한 마누라는 말릴 엄두도 못낸 채 훌쩍훌쩍 제자리뜀만 뛰는데, 무서움 달래려 키웠던 누렁이만 신이나서 물가를 뛰어다니며 컹컹 짖어대고 맑은 하늘에서는 오살나게 뜨거운 6월의 햇살이 내리 쏟아지고 있었다.
*.이 글은 내 고향이 주암댐 공사가 끝나고 담수를 시작하던 시기에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저의 눈으로 적어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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