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그리운 날들의 이야기

돌아 갈 곳 없는 가시고기

바람강 2011. 3. 9. 11:11

돌아 갈 곳 없는 가시고기

내가 처음 미야를 만난것은 ㅂ 읍의 종합병원에서였다.

1984년 10월에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나는 해를 넘긴 ‘85년 여름까지도 골수염으로 꼼짝을 못하고 병상에서 누워지냈다.

당시 스물일곱살이던 나는 골수염을 앓고 있는 다리의 치유여부에 대한 불안감에, 젊음을 결박 당한 채 누워 지내야만 하는 현실의 고통 때문에 심한 절망에 빠져 있었다. 만약 다리를 절단하거나 낫더라도 절게 된다면 미련없이 자살을 하겠다는 막다른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언제나처럼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한참 책속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가 곁으로 다가오는 듯한 기척이 느껴져 책에서 눈을 뗀 순간 난 흠칫 놀라고 말았다.바로 옆에 기다란 생머리를 뒤로 묶은 앳된 아가씨가 서 있는게 아닌가!

하지만 정작 내가 놀란건 다음 순간 그녀의 눈을 보고서였다. 진지하게 나를 주시하고 있던 그녀의 백설같이 하얀 눈자위와 깊고 까만 눈동자가 너무나 투명해 보였던 것이다.

나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갑자기 벙어리가 된 것처럼 그녀의 눈만 올려다 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병실 앞을 지나칠 때마다 책만 보고 계시는 아저씨의 옆 모습이 너무나 쓸쓸해 보여 오늘은 큰맘먹고 말동무가 돼 드리러 왔어요”

넋을 잃은 듯 자기를 올려다 보는 내 시선이 쑥스러웠던지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동무? 아가씨는 아픔이 큰 사람에rps 섣부른 위로마저 아픔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군”

“예? ...아! 하지만 전 아저씨를 위로해 드리겠다고는 안했어요. 단지 제 가슴도 아프기 때문에 말돔무가 되자고 했을 뿐이예요.”

“그렇다면 더군다나 쓰라린 가슴끼리 부대껴서 피 밖에 날게 없을텐데”

“아이 아저씨도... 아저씨는 날마다 책을 읽으시면서 이열치열의 원리도 모르세요?”

:이열치열?“

“그래요. 상처 난 가슴끼리 부벼댄다고 해서 꼭 선혈이 쏟아지는게 아니라 이열치열의 원리처럼 아픈 가슴이 치유될 수도 있단 말이예요”

그렇게 미야는 내게 다가왔다.

미야는 그 해에 여고를 졸업한 스무살의 여자아이. 결핵성 늑막염을 앓고 있는 언니의 간병을 하느라 병원에 와 있다는 그아이와 나는 그날 이후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얘기하며 보냈다.

그렇게 두어달이 흐른 어느 날. 여느때처럼 내 병실을 찾은 미야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수정같이 맑은 눈물이...

언니가 퇴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미야도 떠나야 할 수밖에...

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먼 곳만 바라보다가 언니가 퇴원을 하게 되었으니 웃으면서 떠나야 한다는 말을 해주려고 돌아 보았을 때는 미야가 떠난 후였다.

그녀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엔 ‘아저씨! 사랑이 무언지 잘은 모르지만 전 아저씨를 사랑했었나 봐요. 아저씨! 혹시 미야가 생각나시거든 이 노트에 낙서를 하세요. 1년 후에 꼭 이 노트를 보러 올께요.’ 라는 글이 적힌 쪽지가 커다란 노트와 함께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을 때 난 여러 차례의 수술 끝에 다행이 다리는 절단을 하지 않은 채 퇴원을 했지만 굳어버린 무릅관절의 물리치료를 위해서 ㅂ종합병원에 통원 치료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미야가 오겠다던 1986년 여름의 어느 날. 그 날도 하늘은 무진장 맑고 태양은 눈이 시리게 빛을 내리 쏘고 있었다.

미야는 1년동안 너무나 밝게 성숙해 차마 내가 다가설 수 없을 만큼의 고결함을 풍기는 숙녀로 변모해 있었다.

당초 그 날 만나서 서울행 특급열차로 ㄷ시를 거쳐서 ㄷ시 근처의 해수욕장에 가기로 약속을 했었다. 열차는 1시간 후에 있었으며 난 미리 표 2장을 사 두었었다.

하지만 그토록 화사한 미야 곁에서 난 도저히 여행을 즐길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난 미야와 어울리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기로 결심을 했다.

후배는 갑자기 해수욕장에 가자는 제의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역으로 달려 나왔다. 나는 차표 2장을 후배에게 건네주며 갑작스런 사정이 생겨 난 ㅈ시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 내 대신 미야를 즐겁게 해주라고 말하며 미야가 기다리고 있는 다방 안으로 후배의 등을 떠밀었다.

그들 둘은 내 병실에서 서너번 인사를 나눈적이 있기 때문에별 어려움없이 잘 어울리리란 생각이 들었다.

열차 시간은 약 20분쯤 남아 있었다. 난 미야가 쫓아 나올까봐 재빨리 근처의 다른 다방으로 몸을 숨겼다. 행여 고의로 내가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미야가 가슴 아파 하거나 눈물을 흘릴것만 같아 난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다 미야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을 다져 먹어도 마음 한켠에서는 당장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엮시 미야를 만나지 않는 일뿐이라며 애써 체념하며 그저 망가진 내 다리만 원망해야 했다.

“아저씨! 오락하실거예요?”

하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동전을 짤랑거리며 유난히 빨간 립스틱을 칠한 다방 아가씨가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생글대고 있었다. 내가 정신없이 뛰어 들어와 앉았던 자리가 바로 오락기가 있던 자리였다.

난 허기진 듯 동전을 빼앗아 오락기에 넣었다. 갤러그 게임이었다. 신들린듯 버튼을 두드려대는 내 손동작에 따라 아군기지에서 무차별 난사가 시작되자 공격해 오던 적기들이 수없이 격추되었다. 혈전이었다.

그 때, ‘뚜우’하는 굉음이 내 귀를 때렸다. 기적소리였다. 순간, ‘꽈광’ 소리와 함께 마지막 남은 아군 기지의 쌍발기가 폭파되고 말았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역사를 향해 달렸다.

숨을 헐떡이며 들어선 대합실은 텅 비어 있었다. 검표유이 없는 출입구를 지나 플렛폼으로 나갔지만 엮시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멀리 산모퉁이로 사라져 가는 열차에서 다시 ‘뚜우’하는 기적만이 울렸다. 마치 “아저씨!‘하고 미야가 안타까이 나를 부르는 것처럼...

그렇게 난 미야를 떠나 보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흘렀다. 하지만 난 단 하루도 내 마음 속에서 미야를 보내지 못했다. 중간역에서 내려 돌아온 후배가 “ 형! 그 아가씨가 정말로 형을 많이 사랑했나봐!”라며 씁쓸한 미소를 날리던 날의 그 기억이 아직도 좀 전의 일처럼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을 뿐....

                  1988년 모 주간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