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지는 이야기/물처럼 바람처럼(시)

첫사랑 4

바람강 2019. 2. 2. 16:48

첫사랑 4 풍영 / 임일환 기해년 설을 닷새 남기고 이 겨울의 첫눈이 내린다. 겨우내 마른 바람 불던 가슴에 새벽부터 눈이 내리고 창밖 바라보는 눈길 너머로 젊은 내가 걸어 나간다 눈에 보이는 눈송이는 각각의 모양대로 흩날리는데 회칠한 벽처럼 뿌우연 곳에서 하늘과 땅이 이어지고 머리 위에 눈꽃 이고 내딛는 발자국은 자꾸만 지워진다 처음 세상을 보았던 그 기해년이 다시 밝던 날부터 음력 생일을 면죄부로 내밀며 아직이란 단어만 웅얼댔다 젖 달라 떼 쓰던 아이처럼 애처롭게 허공을 가로 저어도 가속이 붙은 시간 앞에 달력 한 장이 맥없이 날려 가고 체념하듯 맞으려던 회갑년 닷새 전에 첫눈은 내리는데 맨 처음, 눈 위에 찍힌 발자국처럼 이름이 지워졌다 이름을 찾으려 헤매던 들녘에서 모습을 잃어버렸다 안타까움에 주저앉아 흐느낄 때 느낌마저 사라졌다 그래도 남은 게 있느냐고 지나가던 바람이 물었다 할 말이 없어 통점으로 남은 그리움을 하늘에 던졌다 눈 속으로 걸어 나간 젊은 내 모습이 점점 희미해진다 발자국이 지워져 돌아올 수 없는 그도 잊어야 한다 떠나간 것들은 모두 시간이 먼지 되어 묻어 버리니까 결국, 하늘과 이어진 곳에서 던져둔 그리움이나 만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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