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18일
아침 뉴스에 전남 서해안에 눈이 올거라는 예보를 듣고 '참 빠르기도 하네'하고
생각하다 갑자기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버리고 마는가 싶어 가슴 깊은곳 어딘가가
텅 비어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쏘아놓은 화살과 같은 게 세월이라지만 이렇게
나 해 놓은 일 없이 해가 저물어 간다고 생각하니 하루를 허망하게 보내고 저녁노
을을 대한 것 처럼 헛헛해지는 하루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둠이 창에 너울거릴 즈음 영광쪽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시큰둥한 내 반응과 상관없이 저 쪽에선 통통 튀는 목소리로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다며 호들갑을 떨어댄다. 아직 흐리기만 한 광주의 하늘을 보며 기어이
오늘 첫 눈이 오려나 보다 생각하니 괜시리 바빠진다. 때 이르게 집에 들어선 탓에
아이들 엄마는 화들짝 놀란다. "어이! 빨리 옷 든든히 입고 영광이나 가세!" 했더니
"나 학교 가야돼!"하는 냉랭한 대답이 돌아 온다. 그녀가 이제 야간대 1학년생이란
걸 깜빡 망각했다. 하지만 이런날은 저렇듯 무드 없음이 조금은 안타깝다.
아내가 학교에 가고 아이들도 학원에 간 다음 텅 빈 집에 홀로 있는데 창 밖으로
하얗게 나풀대며 기어이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안달이 난다. 이렇게 집에 앉아 있을
때가 아닌데 하며 서성거려 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이 펑펑 퍼부어 대는 눈을 거실에
서 하염없이 바라볼 뿐 이었다.
두어시간이 지나니 눈도 안내리고 밖에 나갔던 아내며 아이들이 다 들어오고 눈 얘
기로 떠들썩 했다. 난 갑자기 겨울옷으로 갈아 입으며 모두에게 두꺼운 옷을 빨리 갈
아 입으라고 재촉을 하여 그제서야 내 의도를 알고 들떠 하는 가족들을 태우고 무작
정 밤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송정리를 지나고 전라남도에 들어서자 마자 갑자기 하늘 에서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
했다. 집을 나서면서도 혹여 눈이 안오면 어쩌나 맘 졸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정말로 펑펑
커다란 눈송이들이 차창으로 달려들었고 소리를 지르고 감탄사도 내뱉으며 어두운 시골
국도를 달리는 우리 가족은 어른도 아이도 없는 그냥 소년소녀일 뿐이었다.
창 넓은 어느 찻집에서 따스한 커피 한 잔 씩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 가엔 어느새 눈이
제법 쌓여 있었고 추운 겨울에도 이렇게 가족들과 좋은 기억 하나씩 만들어 가며 사는게
그나마 헛되고 헛된 듯 싶은 우리네 삶에 작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어 살팍한 미소 하
나 지어 봅니다. 2008년 첫 눈이 내린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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