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탓인지 크리스마스의 설레임은 없었다. 하루 지난 오늘 돌발적으로 지리산 둘레길 2구간
걷기에 나섰다. 내친김에 봄이 오기 전까지 전구간을 걸어볼까도 생각중...
보통은 고도가 높은 운봉에서 출발해 주천으로 오는데 우린 주천에서 운봉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주천 농협 앞에 차를 세우고 하천을 건너니 하천 바닥에 온통 갈대가 깔려 있었다. 이젠 많이 말라
바람이 스칠 때면 제법 우는 소리를 내댄다. 머얼리 구름속에 지리산의 자락들이 보이고..
하천을 건너고 작은 들을 지나서 마을을 관통해 뒤로 오르니 언젠가 보았던 것처럼 정겨운 산길
이 시작된다. 아래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도 꽤나 많은 추억을 만들며 자랐을 것 같다.
상당히 가파른 길을 얼마쯤 올랐을까?.. 멀리 남원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무 짐을 지고 허기
가 질 때쯤 어린 나무꾼들은 저 곳을 보면서 도회지로의 꿈을 꾸었으리라.
잘 자린 소나무 숲 사이로 펼쳐진 오솔길을 걷노라니 자꾸만 고향의 그 산이며 길들이 생각나
깊은 추억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들판 건너엔 지리산 정령치에서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하얀 눈이 쌓여 있어 산꾼의 마음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산에나 오를걸...하는.
큰 산 하나를 넘고나니 지친 행인들을 부르는 간이 하우스 쉼터가...
국도로 들어 섰는데 눈에 띄는 초가가 보여 가까이 당겨 본다. 좀은 외형이 우리가 살았던
초가와는 다르지만 흑백으로 바꿔보니 나름 정겹다.
잔설이 남아있는 논두렁을 걸으며 이런 호젓함을 느낄수 있게 길을 허락하신 농부님께 고맙단
생각이 든다. 저수지며 설산 이 모두가 찌든 마음을 정화시켜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잘 단장된 묘역.. 동복 오씨 묘역인데 지금도 왜 이걸 사진에 담았는지
조금은 쓴웃음이 나지만 엮시 나이 탓으로 돌린다.
하천 옆 뚝방길을 걷는 자태가 한없이 여유로워 보인다. 멀-리 목적지인 운봉읍이 보인다. 초장에
경사가 심한 산을 넘고 오래 걷다보니 다리가 아파온다. 하지만 이렇게나 정겨운 길들을 걸을 수 있
었던 오늘이 또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하겠지...
이제 이 한 해도 얼추 다 간 것 같다. 풀어 놓으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세월들. 새삼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들이 짧을거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 온다. 무엇을 찾고 얻으려 그토록 아웅
다웅 부산을 떨었던가? 이제라도 좀 더 여유로이 이리저리 둘러보며 좋은 생각 아름다운 기억으로
가슴을 채우며 살리라 다짐해 본다. 약 14.5km의 지리산 둘레길 제 2구간 걷기는 내 가슴에 많은 추
억과 회한과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해주고 이렇게 끝났다.
'살아지는 이야기 > 가슴에 남는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지리산 둘레길(3)- 인월에서 금계 2010.01.09 (0) | 2010.01.17 |
|---|---|
| 우리 동네 눈오는 날. 2009년 12월 31일 (0) | 2009.12.31 |
| 병풍산의 설경 2009.12.19. (0) | 2009.12.19 |
| 2009.12.15. 안양산... (0) | 2009.12.16 |
| 지리산 둘레길(1).. 2009.12.12. (0) | 2009.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