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첫 나들이를 지리산 둘레길 3구간으로 나섰습니다. 3구간은 원래
인월에서 금계까지인데 그 코스가 너무 길고 오후에 광주에서 집안 행사가 있
어 시간도 빠듯하여 중간정도인 매동마을(지리산 일성콘도 임구에서 좌측마을)
에서 금계까지만 걷기로 했다.
매동마을 고샅을 지나 마을 뒷산 초입입에서부터 아직 눈에 덮여 있는 길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눈에 덮여 있는 벤치며 호젓한 산길에 이따금 오가는 산
행객들의 상기된 모습들이 유난히 정겹게 느껴진다.
이렇게 호젓한 길을 걷노라면 근원을 알 수 없는 따스함이 가슴 안에 그득히
채워진다. 멀리 펼쳐진 자연스런 논배미며 그 옆 산자락에 자리한 이름 모를
마을에서는 내 어린 시절과 내 고향이 겹쳐서 내 안에 들어온다.
작은 웅덩이가 꽁꽁 얼어있다. 이 계절이면 온갖 도구를 다 만들어서 옷이
젖고 손발이 빨갛게 시려오는줄도 모르고 마냥 즐겁기만 했었는데...
그렇게 놀다 집들마다 굴뚝에 저렇듯 연기가 피어 오르고 밥짓는 냄새가 날
때쯤 문득 엄마가 보고싶어지는 것 같고 배가 고파져서 집으로 향했었지...
둘레길 여기저기에 저처럼 특산품이며 요깃거리를 파는 집들이 생겨났다. 더
러는 왁자지껄 저런곳에서 커피며 간식을 먹는 사람들 무리도 있다.
처마 끝에 달린 고드름이 새삼 정겹게 느껴진다. 초가집이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산 허리를 돌고 마을 뒤를 지나 또 고개를 넘어도 길 위엔 온통 눈 눈 눈 뿐이다.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출발할 때 말았었는데 어느새 눈발이 날리기 시작
하고 천왕봉 쪽엔 제법 눈이 많이 내리는 것 같다.
등구재를 넘어서 내려오는데 또 다른 마을이 나온다. 제법 큰 마을인데 논배미들은 여전히 다랭이 뿐이다. 봄부터 부지런히 저 논배미들을 일궈 이젠 동면하는 짐승처럼 저 곳 놈부들은 그렇게 알콩달콩 겨울을 지내고 계실게다.
아마 이런 옻나무 껍질이라도 벗겨 덫에 걸린 토끼며 산짐승들의 칠을 내서
다가오는 농사철을 준비하실지도 모르고... 예전엔 저 고추대도 걷어서 땔감
으로 썼는데 뽑히지 않은 그 줄기에 말라비틀어진 열매들이 찰칵 셔터를 누르
게 한다.
으휴 저 감! 똘감도 아닌것이 꽤나 군침 돌게 하는데 좀 많긴 하지만 까치
밥으로 남겨둔 농부님의 배려일까? 저 아래 허리 굽은 할머니는 필시 마을
주민인듯 한데 힘겹게 어딜 가실까? 마을에 좋은 길도 있더니만 이 산길을
가시는 건 필시 영감님 산소에 눈이라도 쓸러 가시는 건 아닐런지...
맞은 편에 칠선계곡을 오르는 추성마을 골짜기가 보이는 게 오늘의 나들이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 같다. 멋들어진 팬션들이 눈에 띄고 몸도 조금은 지친듯 해
4시간 남짓 추억속에 푹 빠져들었던 나들이를 마감해도 아쉬움 만큼의 뿌듯함
도 간직한 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더 많이 느끼고 호흡하며 그렇게 올 한 해
의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메꾸어 가야지. 언제든 뒤돌아서서 '그래, 내게 주어진
시간들 아름답게 잘 메꾸어 왔구나!'라고 말 할 수 있게 그렇게 살아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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